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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컨트랙트 관련 법률 이슈에 대한 단상 2019-01-10
강현호 hhkang@blockchainnews.co.kr

▲ [출처: 셔터스톡]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의 하나는 블록체인 기술과 블록체인 기반 결제수단인 암호화폐다. 그중에서 특히 스마트 컨트랙트(스마트 계약)를 가능하게 하는 이더리움의 등장으로 스마트 컨트랙트 활용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암호화폐의 원조인 비트코인이 주로 블록체인상 통화 및 지급수단을 중심으로 한 암호화폐인데 반해, 이더리움은 블록체인에 계약 기능을 탑재해 블록체인 기술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마트 컨트랙트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표현하면 ‘프로그래밍되어 자동으로 실행되는 계약’으로 정의할 수 있다. 스마트 컨트랙트의 본질적 특성은 ‘자동 집행력’ 즉, 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한 강제 집행이 아니라 컴퓨터 언어 코딩을 통해 계약이 자동으로 집행되는 데 있다.


전통적 계약의 경우 양 당사자가 합의하고 이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아 강제집행을 해야 하는, 즉 계약과 집행이 분리된 반면, 스마트 컨트랙트에서는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 계약 집행이 된다. 즉 계약과 집행이 융합됐다고 볼 수 있다. 집행 비용을 별도로 쓸 필요가 없다는 측면에서 비용 절감의 장점이 있다.


스마트 컨트랙트 활용이 활성화된다면 여러 가지 가정과 조건을 설정해 조건이 성취되는 경우 일정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프로그램을 짤 수 있으므로 기존 회사나 단체 더 나아가 정부와 같은 조직 없이도 계약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이상론도 등장하고 있다. 이는 ‘분산화 또는 탈중앙화된 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하지만 조직이 수행하는 의사결정과 거래는 매우 다양하고 변수가 많다. 블록체인상에 구현할 수 있는 거래도 있지만, 블록체인에 구현할 수 없거나 구현하더라도 그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거래와 행위도 많다. 아무리 정교하게 프로그래밍한다 하더라도 조직이 향후 수행하는 의사결정과 집행을 모두 예상해 반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조직은 복잡하거나 급박한 상황에서 이에 맞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조직이 향후 수행해야 하는 행위, 특히 이례적이고 긴급한 행위를 모두 예상하여 스마트 컨트랙트로 구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서 중앙기관이 없는 자율조직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직은 이상론에 가깝다. 물론 조직의 의사결정과 집행 사항 중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예상 가능한 거래에 대해서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측면에서는 DAO의 가치와 효용성이 크지만, 이를 제외한 복잡 다기한 거래의 경우 여전히 인간 조직이 필요하다.


▲ [출처: 셔터스톡]

그렇다면 스마트 컨트랙트가 거래에서 사용되는 경우 어떤 법률상 문제가 있을까? 먼저 블록체인 위에 코딩된 스마트 컨트랙트를 법률상 계약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계약 성립의 경우 특별한 형식을 요구하지 않는 불요식주의를 취하기 때문에 계약 당사자 간 청약과 승낙이라는 합의가 있으면 된다. 즉, 합의가 반드시 문서로 작성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구두 합의도 계약이 될 수 있는데 다만 문서 계약에 비해 내용을 입증하는 데 더 어려울 뿐이다.


그럼 스마트 컨트랙트는? 당사자들의 합의가 있다면 계약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유언을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경우 효력이 있을까? 유언의 경우 우리나라는 불요식주의의 예외로서 엄격한 형식(문서)과 조건을 준수하는 경우에만 효력을 인정하므로 법률상 효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스마트 컨트랙트의 문제는 계약상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모두 예상해서 코드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 이행 과정에서의 여러 변수와 상황을 코드에 반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전제와 조건이 조금이라도 상이하다면 집행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통상적 계약의 경우에는 계약 문언에 대해서 당사자 간 의사와 당시 상황 등을 고려하여 법원이 해석을 하거나 당사자 간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법이 일정한 합의를 보충해 탄력성과 융통성을 기할 수 있으나, 자동 집행이 본질인 스마트 컨트랙트에서는 통상적인 계약의 해석과 집행에서 볼 수 있는 탄력성과 융통성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컴퓨터 언어는 자연어와 달라 전문성이 필요하므로, 스마트 컨트랙트의 작성, 해석, 집행과 관련해서는 법률 전문가이면서 프로그래밍도 잘 아는 변호사나 전문 프로그래머와의 협업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 변호사가 그 의뢰인을 위해 중국어로 계약서 초안을 작성하고, 그 계약서에 당사자 간 합의가 정확하게 반영됐는지를 검토하는 경우라면 변호사 자신이 중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하거나, 중국 변호사 또는 전문가와 협업하게 될 것이다.


스마트 컨트랙트의 경우에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프로그래밍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당사자 간 합의 내용이 정확하게 코딩됐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법원에서 스마트 컨트랙트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코딩 전문가를 전문가 증인 또는 감정인으로 선임해 그 의견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스마트 컨트랙트가 거래 비용을 오히려 증가시키는 측면도 없지 않다.


만약 당사자가 합의한 내용이 정확하게 코딩되지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합의 내용과 코딩된 계약서와 차이 정도에 따라 합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고 보거나 의사표시의 착오로 인한 취소가 문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합의를 스마트 컨트랙트에 담는 데 발생할 수 있는 불일치, 착오를 최소화하는 것이 스마트 컨트랙트 사용의 활성화에 중요한 이슈로 등장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코딩을 정확하게 몰라도 스마트 컨트랙트를 쉽게 작성할 수 있는 플랫폼이나 앱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당사자 간 의사가 코딩에 정확하게 반영되었어도 이를 법원이 증거로서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이는 블록체인상 기록을 문서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된다. 우리나라는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을 통해서 전자문서의 문서성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상의 기록도 일종의 전자문서로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론, 견해 또는 판례가 없다. 또한 문서에 의한 계약의 경우 인감(도장)의 날인 또는 서명을 통해 그 문서가 진정하게 성립되었음을 입증하고, 전자서명법상 전자문서의 경우에는 공인전자서명을 통해 입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스마트 컨트랙트는 무엇을 통해 입증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상 기록에도 서명이 가능한데 그 서명을 전자서명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전자서명처럼 블록체인상 서명에 공신력을 부여하기 위해 공인인증기관을 둬야 할까?


▲ [출처: 셔터스톡]


향후 블록체인과 스마트 컨트랙트가 거래에서 많이 사용되면 이러한 법적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이에 대해 향후 여러 가지 견해, 해석론 그리고 판례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나, 궁극적으로는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컨대 전자문서처럼 블록체인상 기록도 문서로 인정하고 블록체인상 서명을 일정한 요건하에 전자서명으로 인정하는 등 이를 뒷받침하는 법령의 개정이나 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스마트 컨트랙트가 자동 집행력이 있다 하더라도 일부 거래는 법적 효력을 인정받지 못할 경우도 있다. 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부동산 거래를 모델로 하여 부동산 소유권과 그 이전을 블록체인 플랫폼에 기록하고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당사자 사이의 부동산에 대한 권리 변동을 자동 이전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부동산 등기제도가 있고, 정부가 관리하는 부동산등기부에 소유권 등기가 완료돼야 권리변동이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이를 부동산등기의 성립요건주의라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정부가 법령을 개정하여 블록체인 장부에 현재의 부동산등기부에 부여하는 정도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거나, 정부가 운영하는 현행 부동산등기부를 블록체인으로 구축하지 않은 한 일부 사업자가 블록체인상에서 부동산 거래를 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자동으로 권리가 이전되도록 한다 해도 법으로 그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 플랫폼에 동의하고 참여하는 당사자 사이에서만 계약 이행을 주장할 수 있는 계약적(채권적) 효력만 인정될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스마트 컨트랙트는 자동 집행력으로 인한 비용 절감 등 여러 장점으로 인해 향후 다양한 분야와 거래에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스마트 컨트랙트가 자동 집행력이라는 본질적인 특성을 유지하고 실제 거래에서 그 효력과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스마트 컨트랙트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에서 발생하는 여러 법적 이슈에 대한 고려와 대응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기존 법률 체계에서 스마트 컨트랙트와 부합하지 않거나 충돌하는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기존의 계약법과 다른 새로운 유형의 계약법 체계인 ‘스마트 컨트랙트 법(smart contract law)’, 블록체인에 관한 법인 ‘크립토 로(crypto law)’가 법률 분야의 한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전개와 진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법률가로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안찬식(법무법인 충정 Tech & Comms Team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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